르윈의 내면을 본다, 그래서 [인사이드 르윈]
조엘코엔, 에단코엔의 2003년 작품, [인사이드 르윈]이다. 코엔형제의 명성을 알고 있었지만 나에게 그들과의 첫 대면은 바로 이 영화, 인사이드 르윈이다. 이 작품을 보고 나는 전작들의 높은 평가와 박수 갈채들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나는 인사이드르윈을 보고 르윈이라는 인물에 깊이 빠져들었다. 영화를 통해 한 인물과의 깊은 교감과 같은 것을 느끼게 해준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높다고 생각된다.
이들 형제의 영화가 탄탄한 완성도로 탄생되는 이유는, 이들의 팀웍이다. 르윈데이비스 역의 주인공 오스카 아이작은 인터뷰에서 조엘 코엔은 이성적이고 기술적인 면을 담당하고, 에단 코엔은 감성적이고 음악적인 부분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코엔 형제 감독의 작품들은 언제나 이런 두 가지면의 영화적 완성도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사이드 르윈도 마찬가지다. 실제 인물이었던 미국의 60년대 포크 가수 '데이브 반 롱크'가 활동하던 때를 따라서 그의 일상에 대해 담담히 회고한다. 그는 노래하는 가수였기에 언제나 기타를 짊어매고 다니며 공연을 하며 나즈막히 사람들과 교감한다. 그리고 그 선율은 영화 속에서 극장 안에서 그의 삶 전체에서, 그리고 마침내는 우리들 마음 안에서 이내 크게 울려퍼지고 만다. 감동은 이 지점이다. 그의 노래는 그렇게 쉽게, 부드럽게, 술술 불려지는 노래가 아니었기에.
영화의 중심은 두 가지에서 축에서 움직인다. 한 가지는 그의 음악. 르윈 데이비스가 사람들을 만나도, 차 안에서도 부르는 그의 노래 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고양이'. 처음엔 이름조차 몰라서, '야옹아', 또는 '고양아'라고 불렀지만 고양이 이름은 '율리시스'였다. 그의 노래는 포크송을 불렀던 뮤지션들의 마음을 말해주고, 바로 그 자신의 마음까지 담기에 충분해 보인다.
[hang me oh hang me 노래가사]
Hang me, oh hang me I'll be dead and gone.
Hang me, oh hang me I'll be dead and gone.
I wouldn't mind the hanging
It's just the laying in the grave so long,
Poor boy, I've been all around this world.
I've been all around Cape Jerdo, and parts of Arkansas.
All around Cape Jerdo, and parts of Arkansas.
I got so goddamn hungry, I couldn't hide behind a straw
work my lower jaw, God knows.
Poor boy, I've been all around this world.
I went up on a mountain, there I made my stand
I went up on a mountain, there I made my stand
Rifle on my shoulder and the dagger in my hand
Poor boy, I've been all around this world.
So put the rope around my neck, hang me up so high
Put the rope around my neck, they hanged me up so high
The last world I heard them say
It won't be long now before you die
Poor boy, I've been all around this world.
우리가 인사이드 르윈을 보면서 영화가 말하는 것에 충분히 공감하고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의 노래들 때문이다. 포크음악이 그렇듯 주저리 주저리 내 말을 뱉어내듯 곡이 전개된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자연스레 그의 내면을 보게된다. 그가 누나에게 '쇼비지니스'로 이젠 성공할거라고 어쩌고 말하는 건 사실 진심이 아니다. 그는 단지 '노래'하고 싶을 뿐이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현실에서 그의 'hang me, oh hang me'는 더욱 더 그의 속 마음을 절실하게 표현해내는 수단이 된다. 이런 그의 목소리에서 어떻게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곧 60년대의 뉴욕 어느 포크 공연장에 가 있게 된다. 그곳에서 르윈은 꺼지지 않는 카페 조명 등 아래서 큰 눈을 지그시 뜨며 낡은 기타와 한 몸이 되어 노래하고 있다. Fucking folk songs - 라고 외치는 르윈에겐 엿같은 인생에 한 줄기 빛은 음악이라고 역설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축. 바로 고양이다. 늘 미안하게 신세 지는 교수님 댁 고양이 말이다. 방황하는 르윈과 달리 마냥 평화롭게 안락한 집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르윈은 신세지는 거다. 그리고 르윈이 재빨리 몰래 그 집을 빠져나오는 사이 고양이도 같이 나오고 만다. 르윈은 고양이를 어렵게 잡았고 닫혀진 문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어 바로 그 때부터 고양이와의 동행이 시작된다. 누군가의 고양이. 그리고 고양이를 맡기고 싶지만 그와 같이 길을 떠나야 했던 고양이. 놓치면 달아나고 생긴건 또 얼마나 비슷비슷한지. 르윈에게 음악이란 그냥 그런 것 아닐까. 르윈에게 있어 음악이란, 노래를 한다는 것은 달아날듯 달아나버릴 것 같지만 뗄 수 없는, 하지만 놓치면 영영 달아나 버려서 꼭 껴안고 가고 싶은. 고양이 율리시스처럼말이다. 모두의 시선도 비슷하다. 고양이를 품에 안은 남성을 곱게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 음악으로 남의 집 소파나 전전하며 그래도 생존을 위해 노래해야 하는 르윈을 보는 동료들의 시선들은 교묘하게 겹치고 많이 닮아있다.
인사이드 르윈을 그냥 아무 의미없이 봐달라는 코엔형제 감독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를 따라가다 보면 고양이도 제자리를 찾고 르윈 또한 다시 (퍼킹) 포크 소공연장에서 주절 주절 노래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아질 거라고 믿지만 그렇지 못한, 하지만 달아날 듯 하고 아슬아슬했던 삶의 곡예길은 그렇게 공연장 조명 등 아래서 다시 펼쳐진다. 미래는 기약할 수 없다. 우리의 삶이 늘 그렇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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