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국열차 made in korea,
봉준호 감독의 진두지휘하에서 탄생한 '코리안 SF' ]
호불호가 갈렸던 작년의 시끄러움을 뒤로 하고,
프랑스만화를 원작으로 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가 작년 여름, 한국을 들끓게 했었던 기억이 난다. 봉감독의 작품인 만큼 많은 기대와 관심 속의 그의 영화가 공개됐었고, 헐리웃의 익숙한 배우들과의 작업으로 더더욱 한층 영화에 대한 완성도를 기대하며 많은 과객들이 극장을 찾았었다.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엊그제 이 영화를 처음 봤고 아마 나처럼 다운로드 상품으로 이 영화를 처음 만나본 사람이 많을 거라 생각되지만 아무튼 늦게라도 그의 영화를 볼 수 있어서 나에겐 좋은 시간이 되어주었다.
설국열차라는 제목부터 영화적 상상력을 기대하게 한다. 그리고 시계는 이미 2154년으로 우리를 옮겨 놓으며 SF가 늘 고정 매니아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듯 그렇게 봉감독의 Snowpiecer는 대중과 평단의 영화에 대한 관심을 최절정으로 끌어다 놓는다. 하지만 이런 과한 기대에 대한 반응에도 우리는 봉준호 감독이기에 안심하며 영화를 기다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감독의 꼼꼼함은 정평이 나있었고 그의 전작들은 영화사에 남을 만큼의 교과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살인의 추억'이 좋다.
설국열차라...
열차는 달리는 것. 그 안에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레일을 의지해 달리는 열차에겐 분명히 그 끝이 있을테고. 탑승된 승객들에게도 선택권은 단 두가지겠지. 내리느냐. 내리지 않고 달려가느냐.
이런 한정된 공간과 인물들의 부자유함들이 더 나아가 지구의 위기인, '빙하기'를 만나게 된다. 빙하기 속의 얼어붙은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는 또 다시 더 위태스러우며 한계에 맞닥드릴 수 밖에 없다. 나는 이런 배경의 장치들이 영화의 긴장감을 이미 형성해주었고 그래서 영화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본론으로 들어간 영화. 설국열차는 그렇게 시작되자마자 반란이 계획된다.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실행에 옮기며 그들에게 주어진 틀을 깨려한다.
SF장르의 영화나 소설들에서 역시 볼거리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들이 알 수 없는 시대와 미지의 공간에 막무가내 던져져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생각으로 그 시대를 살 것이며 또 난관을 헤쳐나갈 것인가. 설국열차에서의 꼬리칸 생존자들은 월포드라는 열차 우두머리와 대화할 수도, 그를 만날 수도 없다. 그의 불공평한 횡포에 늘 놀아나고 복종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들은 열차를 제멋대로 점령한 월포드를 향해 무기를 들고 한 칸씩 한 칸씩 쳐들어가려한다. 이런 영화의 설정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세계에도 소수의 권력자가 존재하며 그들이 구축해 놓은 시스템 안에서 늘 복종하고 내색하지 않는 게 일상화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명확하게 한 사람으로 존재하지만 현재의 우리에게는 특정할 수 없는 불특정 세력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흥미로운 것은 생존한 사람들에겐 희망이라곤 그저 앞 칸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는 점 뿐이다. 그리고 그들 중 한 사람이 묻는다. 그렇게 앞으로 가고 엔진 칸까지 점령하고 나서, 그러고 나선 무얼 어떻게 할 것인가.
영화의 초반부에 던져진 핵심적인 질문. 그래, 그렇게 나아가고 나서는 어쩌겠다는 건가.
모든 이에게 던져지는 뚜렷한 질문. 당신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당신 삶의 궁극은 도대체 무엇인가.
사실 이 영화 초반부터 나는 이 영화가 무척 좋아진다. 직접적인 대사가 때로는 그 어떠한 상징과 은유보다도 깔끔하고 감각적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설국열차의 대사들이 직접적이어서 사실 마음에 들었다.
송강호와 고아성의 조화가 영화 보기 전 조금 내심 걱정되었지만 힘을 뺀 두 사람의 감초 연기가 조연으로서 빛났다. 그리고 크리스에반스의 연기는 영화를 이끌어가기에 훌륭했다고 본다. 크리스에반스가 기차의 한 칸씩을 들어갈때마다 펼쳐진 대조적 인간상들이 굉장한 조소를 이끌어냈다. 그 대비가 이 영화의 백미다. 그리고 마지막 엔진칸에서의 월포드와의 만남은 허무 그 자체다. 그리고 기차는 예상했던 대로 멈춰버리고 박살난다. 월포드의 경이로웠던 계획, 인류의 개체 수 조절이라든가 부품을 대신해서 아이를 넣어놓는다는가 하는 경이적인 그의 생각들도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허무한 끝을 향해 기차는 달렸고 또한 종말을 맞는다.
설국열차를 타지 않은 우리도, 늘 질주하고 그 달리기를 멈추지 않으며 살아간다. 그렇게 멀리 빙하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한정되어 있고 그 끝은 열차와 다르지 않다. 열차 안에 갇힌 꼬리 칸 사람들과도 물론 다르지 않다.
한 칸씩 더 전진할 때마다 느껴졌던 일시적인 풍요와 안락이 그 허무한 끝을 더 허무하게 느껴지게 했던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은 디테일로 유명하니 놓친 부분이 있진 않나 다시 영화를 천천히 되감아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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