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에 대하여 말하다
뱀파이어와 대화하는 듯한 경험ㅣ그동안 뱀파이어 영화들은 많았지만 정말 뱀파이어들이라는 존재를 제대로 맞딱뜨리게 해줬던 영화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마치 뱀파이어들의 생각을 물어보며 대화를 나누는 듯 하다. 음산하고 퇴폐적인 '뱀파이어'들이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수세기를 걸쳐 생존해왔다. 그리고 인간들을 '좀비'라 부른다. 그 이유는 인간들이 세상을 망쳐가고 있기 때문이다. 수세기를 걸쳐 성인 아닌 성인이 되어버린 이들은 반복되어 오는 재앙과 대혼란들이 인간이 스스로 자초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석유를 두고 전쟁을 일삼거나 이제 곧 석유 처럼 바닥나 버릴 지도 모를 물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 채 펑펑 쓰고 있다며 인간을 좀비라 칭하며 야유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뱀파이어들은 그들이 생존을 위하여 공급 받는 '순수 혈액' 외에는 전혀 욕망하지 않는다. 이들은 글을 읽고 쓰며 시간을 보내고 음악을 듣거나 만들며 음악 안에서 춤 추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 전반적으로 풍기는 나른하고 퇴폐적 분위기 속에서 이들의 평온한 일상이 사랑스러워지기까지 한다.
이기적이지 않은 자, 사랑하라ㅣ아담과 이브는 '뱀파이어 커플'이다. 아담은 음악을 만들고 이브는 글을 쓴다. 이들이 인간의 피 만큼으로 중요하게 공급 받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음악과 책이었다. 특히 이브가 여행가방에 차곡차곡 넣어가며 손으로 글귀를 어루만지던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수많은 글 중에 진짜 글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그런 작품들을 되새김질하며 읽곤 하는 것이다. 이 뱀파이어 커플은 비슷한 듯 그러나 많이 다르기도 하다. 이브는 세상을 그럭저럭 수용하며 살지만 아담은 타락을 더해가는 인간들을 참지 못할 정도로 역겨워한다. 퇴폐의 아이콘인 뱀파이어가 역겨워 하는 인간(좀비)이라...영화 안의 재치가 가득하다. 이들은 떨어져 살고 있다. 그것도 다른 나라에서 말이다. 이브는 모로코에서, 아담은 디트로이트에 거주한다. 아담이 좀비들에 지쳐 힘들어하고 있을 때 이브는 야간 항공권을 발급 받아 그 즉시 그를 위로하러 가방을 꾸린다. 그들은 재회했고 다시 뜨겁게 사랑한다. 이들이 사랑하지만 굳이 같은 장소에서 살지 않으며 그리고 언제든 서로를 향해 날아갈 수 있다는 설정은 사랑 앞에선 어려울 것도 불가능 할 것도 없음을 드러내주기도 한다. 아무튼 이 귀여운 커플은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며 약한 부분을 보듬어준다. 뱀파이어들이 오래도록 생존하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때, 아담과 이브는 그렇게 평범한 사랑 하나만으로 용기를 얻고 살아갈 희망을 갖는다.
순수에의 갈망, 순수만이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ㅣ 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바로 뱀파이어들이 섭취해야 하는 인간의 혈액이 깨끗하고 순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염된 인간의 피를 마시게 되자 극중 '말로'는 그 독이 순식간 몸에 퍼져 최후를 맞고야 만다. 그만큼 세상에 이제 깨끗한 피는 얼마 남지 않았으며 거의 대부분의 인간의 피가 오염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담은 인간을 향해 '좀비'라 부르며 얼마 남지 않을 희귀한 순수 혈액을 공급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말로가 순수혈액을 찾기 어려워하며 죽음을 맞이한 것 처럼 이들의 앞날도 불투명하긴 마찬가지이다. 이들 뱀파이어들은 결국은 오염되어 가는 세상과 인간들로 인해 멸종해갈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종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이 아무리 몇 세기를 거쳐 문화와 예술을 꽃 피우는 데에 기여했을지라도 이들이 받게 되는 결과는 죽음 뿐인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약간의 어둡고 나른한 분위기에서 순수를 찾기 위해 끝없이 갈망하는 뱀파이어들을 바라본다. 이들은 결국 언젠가는 오염된 피를 마실 것이고 그 독은 그들을 서서히 죽여갈 것이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비유. 그래서 더 와닿는다. 세상의 타락과 변질에 대한 창백한 조소. 이것이 짐 자무쉬가 이 영화를 통해 말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 블로그아침
감독 짐 자무쉬에 대한 기사 한 토막, 가디언
http://www.theguardian.com/film/2014/feb/20/jim-jarmusch-women-leaders-only-lovers-left-alive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빅아이즈 - 하나는 확실히 잘했던 그녀, 마가렛 킨 (0) | 2015.03.15 |
---|---|
[영화 투와이스본 twice born] 사랑이 가진 총천연색들 (0) | 2014.12.10 |
[영화 그래비티 Gravity] 우주로 던져진 외로운 자아 (0) | 2014.10.02 |
르윈의 내면을 본다, 그래서 [인사이드 르윈] (0) | 2014.04.21 |
설국열차, 그 질주 끝의 허무함 (0) | 2014.04.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