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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배수아] 그의 글들이 귓가에서 쟁쟁하다

by 비오는날비맞기 2013.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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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 배수아만이 흐르듯 표현해낼 수 있는 내면의 많은 울림들.

 

 

 

 최초의 기억들이 있다. 형식적으로는 눈으로 본 장면들로 이루어지나 본질적으로 청각으로 남아 있는 기억들, 그리하여 마침내는 청각이 다시 그 안에서 스스로 장면을 재현하고 있는 기억들. 멘델스존 바톨리 거리, 음악에 집중하면서 눈앞에서 내가 타야할 기차가 왔다가 사람들을 싣고 가버리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지폐 위에 하얖게 빛나고 있던 클라라 슈만의 초상, 음반 상점의 쇼스타코비치 코너, 수공업자의 거리에 있는 골동품 상점에서 만난 축음기, 지도에 나와 있지도 않게 작은 골목의 악기 박물관, 음악 학교들. 더 많은 음악. 빗방울이 떨어지고 그 위에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고 다시 또다른 빗방울이 떨어졌다. 다시, 그리고 또다시 또다른 빗방울이 그 위에 떨어지고, 문득 고개를 쳐드니 그러한 아무런 약속도 없이 스스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세계들이 고속도로와 경계를 나타내는 흰 울짱 너머의 들판 가득히 펼쳐졌다. 비에 젖은, 구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무거운 공기가, 바람에 따라 너울거리느 ㄴ공기가, 그늘에 잠긴 듯한 저녁의 침울한 색이, 흙과 물과 공기와 색이. 제각기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는 그들, 각자 다른 언어를 가진 그들 사이에서 음악가가 화음을 발견하였다.

 

에세이스트의 책상, 본문 중에서

 

 

음악의 가치는 결코, 대왕의 이름으로도, 지불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을 한없이 용서하면서 동시에 무시하고 능가한다. 음악은 불만과 결핍과 갈증으로 가득한 인간의 내부에서 나왔으나 동시에 인간의 외부에서 인간을 응시한다. 혹은 인간의 너머를 응시한다.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인간이 그것에 의해서 스스로 응시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표현. 언어와 음악은 그렇게 공통적이다. 그러나 음악은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입을 다문다. 음악을 이해한다는 것은 점차적인 과정이 아니다. 그러나 그 모든 행위들에 대해서 인간은 단지 '나는 음악을 듣는다'라고 서술할 수 있을 뿐이다. 나를 사로잡을 무렵, M이 나에게 말한 대로, '음악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 중에 유일하게 인간에게 속하지 않은 어떤 것이다'.

 

 

배수아를 소설가라고 부르는 게 어색했다.

배수아는 글 쓰는 사람, 작가.

 

그의 활자들을 매우 아낀다. 책들이 닳을까봐, 살살 넘기며 보게된다. 나는 도서관에서 닳아있던 책들이 싫었다. 겨우 글만 읽을 정도로 페이지들도 갈래갈래 찢겨질려고 했던 책들은 왠지 모르게 많이 안쓰러웠다. 그의 책은 온전한 모습으로 빳빳함 그대로 간직하며 몇번씩 되새김질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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