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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다음 대통령은?] 이기기 위해 뛰어들었다 '힐러리 클린턴'

by 비오는날비맞기 2014.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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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다음 대통령은?]

이기기 위해 뛰어들었다  '힐러리 클린턴'

'I'm in to win'

 

 

 

 

 

1947년생. 힐러리 클린턴.

1975년에 빌 클린턴과 결혼

그녀의 직업은 변호사였다.

 

예일대 법과 대학원 박사. 1993년 남편 빌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1월 집권을 시작.

힐러리는 미합중국 퍼스트레이티가 된 것이다. 그녀는 최초 석사학위 이상을 가진 퍼스트레이디였다고 한다.

당시 남편 클린턴을 대신해 그녀는 국민건강보험 개정을 위한 일을 맡았다. 그러나 이 방대한 계획은 상하원에서 필요한 표를 얻지 못한 채 1994년 부결되어 실패로 돌아가고만다. 이때 국민들의 지지율이 35퍼센트 대로 하락하기도 했다.

 

 

 

 

이기기 위해 뛰어들었다  '힐러리 클린턴'

 

 

1998년 백악관 인턴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로 미국이 들썩였다. 결국 빌 클린턴의 탄핵에 이르기까지 사건이 커졌다. 힐러리는 그 당시 우익의 음모라고 일축했지만 이러한 의혹들은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그 사이 결혼 위기설과 이혼설에 휩싸인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이후 자서전에서 힐러리는 클린턴에게 사실 매우 화났었고 결혼을 유지해야 하는 가에 대해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대중은 그녀가 이 사건에서 보여준 결단력과 인내력에 긍정적 평가를 하게 되며 국민 지지도가 71퍼센트까지 기록하게 된다. 이 사건만 봐도 그녀는 쉽사리 감정에 휘둘리는 여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기기 위해 뛰어들었다  '힐러리 클린턴'

 

 

그녀는 실제로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이며 야심에 찬 여성이다. 남편 빌 클린턴은 바람끼가 다분한 사람이었지만 그녀는 그를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전에도 전력회사 간부인 메릴린 조 젱킨스와 사랑에 빠져 1989년 힐러리에게 이혼을 요구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힐러리는 이를 거부했다. 그 당시 힐러리는 집도 한 채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돈이 없는 상태여서 이혼 후 딸 첼시를 혼자 키우기 버거워질 것을 걱정했다고 한다.

힐러리는 권력욕이 강했기 때문에 남편의 끊임없는 부정에도 또 그의 이혼 요구에도 결혼 생활을 지속해나갔다. 이 사실은 워싱턴포스트 기자를 지낸 칼 번스타인이 8년간 취재 끝에 출간한 책 '힐러리 로댐의 삶'에서 자세히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이기기 위해 뛰어들었다  '힐러리 클린턴'

 

 

 

 

힐러리의 지인들은 그녀를 감정에 좀처럼 굴복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생각이 따르지 않는 감정이란 나에겐 늘 하찮은 것이었다."라고도 말했다. 그렇다 힐러리는 남편보다 정치를 더 사랑한다. 그래서 그녀는 배우자에 의해서 자신의 주관이나 일의 실행이 영향 받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그녀는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 때에도 오히려 백악관 직원을 격려하며 미소를 머금고 남편의 스캔들 인정 TV연설을 시청했다고 한다.

 

이제 힐러리는 전 국무부 장관을 거쳐 다시금 다음 대선주자로 걸음을 떼려 하고 있다. 남자 못지 않은 정치적 마인드와 강직함으로 미국의 최초 여성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 기대되는 지점이다.

 

그러나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 행보에 부정적 전망도 잇따른다.

버락 오바마의 지지율이 떨어진 지금 그와 다른 성격의 주자를 기대할 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으로 근무한 경력으로 인해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그래서 힐러리 클린턴이 오바마 대통령과 어떻게 차별화해 나갈지가 이번 대선의 승부에 대한 관건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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