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배수아 '북쪽 거실' 소장하며 가장 많이 들여다보는 책

by 비오는날비맞기 2015. 3. 24.
반응형

 

배수아 '북쪽 거실' 소장하며 가장 많이 들여다보는 책

 

 

 

읽는 일, 쓰는 일이 배수아의 소설을 보면서 가장 자기를 낮추는 일 또는 자기를 풍부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곧 글 쓰기와 읽기에의 희열감으로 변하곤 한다. 이 소설 '북쪽 거실'도 그렇다. 한토막 한토막 아껴 읽도록 만들기까지 작가가 녹여 놓은 철학과 감성은 절대 수월한 것이 아니다. 늘 고뇌하고 사색에 사색을 거듭하며 탄생시켰을 작품들. 나는 고스란히 그의 글을 되짚어 다시 읽거나 이렇게 필사해보는 것이 큰 생활의 일부가 된 것에 그저 감격한다. 이유는 그런 작가를, 배수아와 같은 한국의 작가를 다시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일찌감치 또 다른 닮은꼴을 찾기를 그만뒀다. 배수아로 만족한다. 그가 퍼뜨려 놓은 수 많은 조각들의 텍스트가 여전히 나에게 흥미로운 연구꺼리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P108

그렇지만 나는 오늘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어. 커다란 종이 내 머릿속에서 울리고 있고 바람이 시간의 흰 나뭇잎을 멀리멀리 실어 가는 중이지. 강물 위로 비치며 희미해져가는 황금빛 이 순간, 분수와 우물, 연못, 운하, 소리 없는 수로, 빗물 웅덩이, 모든 반사되는 것들, 얼굴를 알지 못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강물을 디디고 간다. 오늘은 눈이 멀고, 내일은 노인이 되리. 그리고 나를 벗어나 허공에 자국을 남기며 지나가는 나, 눈먼 자이며 노인인 나, 그렇게 나를 응시하는 나, 그 나는 오늘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어. 아무도 아닌 자의 아내란 아무의 아내도 아니란 뜻이다.

 

p263

나는 저절로 걷고 저절로 움직이며, 나는 저절로 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전에 사람들은 내 팔다리를 잡고 물속으로 던질 것인데, 물속에 사는 악마들의 부글거리는 웃음, 내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그들의 끈질긴 손길, 절망적으로 발버둥치며 물 위로 떠오르기 위해서 안간힘 쓰는 고토의 시간 또한, 가슴으로 미칠 듯이 붙잡고 싶었던 생의 애처롭게 아름다운 찰나들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모두 다 지나가리라. 그것이 지나갔다고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저절로 숨 쉬고 저절로 자유로우며, 내 부족 앞에서 저절로 떠오를 것이라고 책에는 적혀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오래오래 살며, 마침내 스스로 완전히 사라져버리기를 원할 때까지 살며, 마지막 순간이 오면 울음도 아쉬움도 없이, 한 마리 커다란 황갈색 새가 되어 놋쇠의 황무지를 넘고 돌의 여신의 가슴을 지나 얼음의 산 위, 높은 하늘 속으로 날아갈 것이라고 했다. 보이지 않는 부족들은 내 육신과 마음이 사라지고 건조한 바람에 마지막 뼈 한 줌이 날려갈 때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가만히 지켜볼 것이며, 육신을 갖지 못하고 오직 영혼만으로 이루어진 불멸의 몸을 이끌고, 다시 멀리 서쪽으로 가축들과 함께 길을 떠날 것이다. 드높은 먼지구름의 벽이 그들의 길을 마련하고, 그들의 모습을 우리의 눈으로부터 감출 것이다. 이렇듯 내 이야기는 매일 밤 비슷한 부분에서 끝이 났다.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이자 과거에 해당하는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내가 사라진 다음 자신들이 어디로 가게 되었을지 궁금해하지 않은 채, 그들의 잠자리로 되돌아 갔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