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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영화 Her '그녀'] 우리는 언제 사랑에 빠지고, 언제 외롭지 않은가

by 비오는날비맞기 2015.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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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Her '그녀']

우리는 언제 사랑에 빠지고, 언제 외롭지 않은가

 

 

 

이 영화, Her는 나에게 다양한 화두를 던지게 한다.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문제에서부터 기능적인 것, 물질적인 것, 삶 전반에 관한 것, 과학과 미래에 대한 질문들 등의 다양한 분야의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주인공 테오도르, 그가 사랑에 빠지는 OS '사만다'는 인간적으로 매우 끌리는 개성있고 위트 넘치는 남녀다. 그들은 사려깊고 사랑스러우며 측은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그들의 대화에 깊이 관여하고 흡수되는 내 자신을 어느새 발견하게 된다.

 

 

 

 

테오도르는 아마도 사회 전반의 아주 많은 기능적인 부분들이 컴퓨터와 OS가 인간을 대체하여 작동하고 있을 미래 어느 지점에 살고 있나보다. 그래서 그의 직업이 더욱 눈에 띈다. 그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을 적은 편지를 대필해주는 대필작가다. 손 편지 작성은 컴퓨터가 다 알아서 해준다. 그러나 글과 그 사이의 공백은 그의 머리, 가슴 속에서 나온다. 아무리 감정을 가진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글도 쓰고 감정을 말로 표현해줄 수 있게 될지라도 인간만큼할까. 아니, 신의 영역을 인간이 침범 못하듯 그 또한 인간의 영역이라 침범하기 어려울 거라 보인다. 아무튼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손편지 대필 작가라는 특이한 직업을 가진 테오도르는 우리가 모르는 미래 어느 시점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영화의 시작은 이렇게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이 영화의 색감은 따스하다. 파스텔 톤의 사무실 인테리어, 그레이와 옐로우, 브라운이 섞여 든 그의 집 안, 늦은 오후의 거리를 거니는 테오도르 곁으로 오렌지 빛 석양이 화면 전체를 감싼다. 그 도시의 피곤한 빛 아래로 한없이 외로워 보이는 주인공이 많은 군중들 사이를 걷고 또 걷는다. 따스함과 냉정, 활력과 피곤함, 왁자지껄과 고독이 더 혼재하게 될 앞으로의 미래 사회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듯 하다. 영화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하나의 사건을 만든다. 인간과 같은 감정까지 소유한 최초의 인공지능 OS의 탄생, 외로움과 고독에 허덕이는 인간들이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필연적으로 만들어내고 말 것 같은, 그런 종착역 같은. 인공지능 OS. 그러나 모두들 시간 문제일 뿐 언젠간 가능할 거라고 말한다. 영화는 그 인공지능을 가진 OS를 등장시킨다. 그리고 인간들은 서슴없이 OS를 사들인다. 주인공 테오도르도 예외는 아니다.

 

 

 

 

내 취향, 내 성격, 내 직업 등등을 고려하여 시스템화된 프로그램은 평생을 살아도 만나기 힘들 우리 각자의 쏘울메이트를 만나게 해준다. 매칭된 이 OS는 정말 개개인의 부족한 틈을 매워주고 장점은 최대한 북돋워줄 최적의 계산된 프로그램이다. 인공지능이며 몸은 없지만 감정을 가진다. OS는 인간과의 교류를 통해 더 세밀하게 학습하고 더 인간다워질 궁리를 스스로 하며 더 빠른 속도로 광범위한 정보와 경험의 학습을 통해 고도로 진화를 거듭할 것이다. 스칼렛 요한슨이 목소리로만 연기한 OS '사만다'는 그렇게 테오도르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테오도르와의 친밀해진 감정을 통해 더 인간에 대해 궁금해하고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 심지어 불가능한 육체적 사랑까지도 자신을 대신해 줄 인간을 구한다. 오히려 프로그램이 인간을 설득시켜 인간의 몸을 잠시 빌린다는 설정은 더이상 미래엔 인간만이 주체가 아닐거라는, 주체자에 있어 기기와 인간이 묘하게 역전된 상황을 연출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걱정하는 것이 이런 문제일 것이다. 기능적인 면만을 대신해주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보다 장시간, 광범위한 정보를 무한정 습득한 '초인공지능'의 출현은 인간 고유 가치 체제를 무너뜨리고 결국 인간이 만든 것에 인간이 종속 당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가능케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미래 사회에 대한 냉철한 물음 속에서 영화는 주인공의 내면 깊숙히 파고들어 그의 감정의 물결을 쫓는다. 호아킨 피닉스라는 배우에 대해 스파이크 존스 감독은 연기하는 방법을 모르는 배우라고 했다. 어떤 배역에 있어서 방법론적으로 연기에 접근하지 않는다는 말일 것이다. 그는 어린 아이가 처음 겪는 상황에 직면에 어쩔 줄 몰라하듯이 연기를 맨 처음 대한다고 한다. 그래서 호아킨 피닉스가 매번 다른 성향과 색깔의 캐릭터를 변화무쌍하게 보여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호이킨 피닉스는 백지 상태에서 어떻게 연기할까를 생각하지 않은 채 늘 긴장하고 방황하며 배역에 맞딱뜨린다. 그런 그의 특이함이 살아있는 테오도르를 탄생시킨다. 테오도르가 느꼈을 끝이 안보이던 고독감, 불안, 우울, 분노, 그리움, 배신감들이 대사 없이 그대로 보는 이에게로 전해지는 걸 보면 계산되지 않는 그의 연기는 정말이지 매우 성공적이다.

 

 

 

 

인간은 존재 자체로 충분히 의미있고 아름답다. 신은 혼자 있는 것보다 둘이 있는 것이 보기 좋아 벗을 만들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인간은 신과 함께였고 또 사랑하는 또 한 명의 벗이 존재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홀로 있고 싶어 혼자가 됐다가도 곧 머지 않아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평생의 숙제처럼 우리는 내가 아닌 타인에게서 나를 발견하고 싶고 나를 잘 이해해주는 소통의 짝을 만나고 싶어한다. 인간은 소통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와 모든 것을 같이 해줄 단 한 명의 사람을 찾고 또 찾아해맨다. 우리 모두는 그 전에 만난 적이 없는 처음 만난 사람들이며 그렇게 가족이라는 이름, 친구라는 이름으로 서로 관계하며 살아간다. 처음 만나던 설레임의 순간들을 지나 호기심이 발동하며 많은 만남과 대화로 서로에게 익숙해지며 알아가고 관계에 대한 확신이 들 때면 우리는 순간 생각한다. 내가 사랑에 빠졌구나, 라고.

 

 

 

 

그 시점 그 순간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그 전과 비교하지 못할 깊은 감정을 느낀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더이상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최면을 걸 듯 타인을 통해 외로움이라는 지극히 자연스런 본성을 잠시 구겨 상자 안에 숨겨 논다. 그러나 그 상자 안의 외로움은 타인으로 감춰진 듯 보일 뿐 해소되거나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인간은 그 점을 항상 놓친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인데도 우리는 외로움에서 허덕거리며 헤어나오는 상상만을 거듭한다. 테오도르 처럼 자책하고 자학하며 자신을 채찍질하게 되는데 그게 아마도 외로움의 마지막 종착역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OS 사만다도 그러했듯 테오도르도 사랑과 그 사랑의 끝을 경험하며 삶의 가장 중요한 점에 서서히 다가가며 정신적 성숙을 경험한다. OS와의 사랑이든, 실제 인간과의 지리멸렬한 사랑이든 개인의 삶에서 사랑의 경험은 가장 높고 깊은 파도임에는 틀림없다. 그 파도는 우리가 건너는 인생이라는 바다를 더 바다답게 더 아름답게 해줄 것이다. 파도가 만들어내는 물보라와 추위, 마찰음들이 늘 존재하는 것 처럼 우리의 외로움, 불안들은 늘 수반되어야 할 삶의 필수 불가결의 요소라는 것을 인간은 또 담담히 받아 들여야 한다. 영화 Her 또한 그렇게 끝을 맺는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이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견디기 힘들었지만 테오도르는 전부인에게 자신의 진심을 담은 편지를 전한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순간들이었으며 당신은 나의 영원한 친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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