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토 볼라뇨- 부적] 숭고한 광기의 일부가 되어...
[로베르토 볼라뇨- 부적] 숭고한 광기의 일부가 되어...
'프란시스코 골드먼'이 이 소설을 말한 것 중에
'숭고한 광기'라는 표현이 가장 와닿았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작가, 그리고 이 작품은 읽는 내내 한편의 시를 읽는 것 같았던 느낌. 아욱실리오라는 인물에 대해 이해할 틈 조차 주지 않고 전개되어 가는 그녀 내면의 사건들과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제각기 발현됐던 그녀만의 광기들. 이 소설을 읽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마지막 페이지까지 따라오다 보면 그제서야 그 광기들의 숭고함에 가슴이 벅차오르고야 말았다.
참새와 케찰을 보았다. 두 마리 새는 같은 가지 위에 앉아 있었다. 벌어진 나의 입술이 같은 가지라고 속삭였다. 나는 내 목소리를 들었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계속에 떠 있는 거대한 침묵을 알아차렸다.
나는 일어나 나무 쪽으로 다가갔다. 새들이 놀라 달아나지 않도록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곳에선 시야가 더 넓어졌다. 그러나 바닥을 내려다보며 조심스럽게 걸어야 했다. 그곳에는 헐거운 돌들이 있어 미끄러져 넘어질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내가 나무 옆에 다다랐을 때 새들은 이미 날아가고 없었다. 그때 나는 계곡의 다른 쪽 끝인 서쪽 방향에서 바닥 모를 깊은 심연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내가 미쳐 가고 있는 걸까? 이것이 아서 고든 핌의 광기와 공포일까? 아니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르게 제정신을 되찾고 있는 걸까? 말들이 머릿속에서 폭발음을 냈다. 마치 거인이 내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밖에는 절대적인 침묵이 흘렀다. 서쪽으로 해가 가라앉고 있었다. 아래쪽 계곡에서는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전에 녹색이던 것은 이제 암녹색을 띠었고, 전에 갈색이던 것은 암회색이나 검정색을 띠었다.
(P175 본문 중에서)